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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w77 | 2009/02/19 15:41

氣 의 실 체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사회에서도 기·기공·명상 등 몸과 마음을 좋게 한다는 각종 수련법들이 크게 유행을 하고 있고,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요즈음 인간의 사회에서는 생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생기를 얻기 위해서 기공운동이나 명상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기라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궁금한 점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배워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진위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행동하고 있다.
기(氣)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두고 말하는지 먼저 알아보자.
기라고 하는 것은 기운(氣運)을 말하는 것이고 에너지(energy)를 말하는 것이다. 기는 다시 두 가지 형태의 기운으로 구분해서 볼 수가 있는데 '생기'와 '무기'가 그것이다.
생기(生氣)라는 것은 살아있는 기운, 자기를 가지고 있는 기운을 말하는 것이고, 무기(無氣)라는 것은 순수한 기운, 자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기운을 말한다.
그리고 생기는 다시 두 가지 형태의 기운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한 가지는 사람들이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하게 되는 식물이나 동물에 포함되어 있는 생기로써 사람의 몸 속으로 받아들여서 몸 속의 기관들이 소화를 하고 흡수하게 되는 기운이다.
이런 생기는 자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되면 그 기운은 활동에 의해서 모체에 필요한 기운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사람이 섭취한 이런 생기는 사람이 생명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어떤 물질이 자기를 형성해서 가지고 있던 기운을 다른 대상이 섭취함으로 해서 그 물질이 다른 물질에 흡수되어 다른 대상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으로 변형되는 경우에는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의 생기 즉 질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수련방법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기운이 있는데, 이 기운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게 되면 몸 속의 기관에 의해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질병이나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물질을 통해서 섭취하게 되는 생기, 즉 곡류·채소류·해초류·어류·육류 등에서 섭취하는 기운은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즉시 흡수되어 버린다. 그래서 물질이 가지고 있던 기운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로 소화되고 변화해 버린다.
그러나 물질에서 섭취되는 생기가 아닌, 공기 중에 있는 생기를 사람이 받아들이게 되면 몸 속에 들어온 기운은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병과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이 생기는 자기를 가지고 있어서 살아있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이 기운은 몸 속에 흡수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몸의 기관에 장애를 일으켜서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사람의 의식체에 붙어서 의식을 조종하거나 지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공이나 ××명상, 뇌호흡, ××선법, ××도 등 오늘날의 사회에서 유행하는 방법을 통해서 생기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이며 자기의 의식까지도 상실하게 되는 즉 자기의 영혼을 죽이게 되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로써 질병을 치료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현대 의학으로 치료하지 못한 질병이 치료되는 예도 드물지만 실제로 자신의 병든 몸이 기를 받아들여서 편안해졌다면 실제로는 자기 의식의 상실로 인하여 편안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으로써 이것은 그 사람이 자기의 영혼마저 불행하게 만든 경우인 것이다.
무기라는 것은 자기를 갖고 있지 않는 순수한 기운을 말한다.
무기는 영양소나 에너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을 마실 때, 물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것은 무기이다.
이런 기운은 아주 경미하기 때문에 사람이 활동을 하는 데나 세포에 필요한 도움은 되지 못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적은 것이다.
공기 속에는 생기도 있고 무기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숨을 쉴 때 공기를 통해서 받아들이게 되는 기운은 대부분 무기이다. 이 무기는 사람의 건강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 무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 속에 있는 생기는 자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몸 속에 쉽사리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생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의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파룬공(法輪功)이라고 하는 기공운동을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체조와 비슷한 포즈를 취하면서 공기 중의 생기를 들여 마신다고 한다.
만일 사람들에게 보건체조를 하라고 하면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건체조를 하면서 서로 단합하라고 하면 잘 하지 않는다.
또 보건체조가 좋은 것이니 널리 전파하고 보급하라고 해도 잘 하지 않는다. 또 보건체조를 하고 싶은데 막는다고 정부에 반항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보건체조를 시비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파룬공이라는 기공운동은 중국 정부에 합법화하라고 세력을 과시하고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파룬공에 대해 일제 조사를 실시하고 정부에 반항하는 조직의 해산을 명령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고 있는가? 중국 사회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적인 변화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바로 이 생기 운동, 즉 신(神)들을 사람 속에 집어넣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귀신과 사람을 접목하는 운동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신이 사람을 조종하게 되면 단체 행동뿐만 아니라 어떤 일도 가능하게 된다. 우리들이 말하는 상식 밖의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기를 내세워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너무나 많다.
최근에는 뇌호흡 수련을 통해서 성적이 높아진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참 곤란한 일이다.
어떤 학생이 학급에서 중간정도의 성적이었는데 뇌호흡을 시작하고 나서 학급에서 갑자기 1, 2 등을 다투게 되었다. 현실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말에 손쉽게 빠져드는데 이 일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어떻게 그 학생은 공부를 잘하게 됐는가? 사람의 머리에 열이 있게 되면 뇌의 활동에 저해를 받게 된다. 이럴 때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런 상태에서는 암기의 능력이 떨어진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가슴이나 머리의 혈관에 장애를 일으키는 부분이 있어서 피가 머리로 원활하게 돌아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머리 뒷부분-뒷골이 약해서 빈혈이 일어나고 그 부분에는 열이 생기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뇌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져서 학업성적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 학생의 심장활동에 지장을 주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머리의 혈액 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부분을 제거해 버리면 학생은 정상적인 뇌의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학생의 노력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성적이 오르게 된다.
그런데 집중력이 없던 아이가 짧은 시일 안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성적이 급격히 좋아졌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그 원인이나 과정을 모를 때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원인이나 과정을 알고 나면 기적은 없는 것이다.
원인도 없고 과정도 없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 실상을 규명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런 실상에 대한 확실한 규명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세상의 일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어떤 학생이 뇌호흡을 한지 몇 개월만에 성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 학생의 몸 속에 공기 중에 있던 살아있는 기운이 들어가서 학생의 의식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을 확인할 수 있는 예가 얼마든지 많이 있다.
티벳(Tibet)에 가면 림포체(Rimpoche)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림포체라는 말은 죽었던 사람이 환생(還生)한 것을 말하는데, 어떤 림포체는 태어나서 아직 두 살도 채 안되었는데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기는 과거에 누구였다고 하며 과거에 자기가 사용한 물건이나 말을 기억하고 알아본다. 이런 현상들은 이상한 현상이며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태어나서 오랫동안 말을 배워야 하고, 살면서 사물들을 보고 나서 기억하게 되는데 어떻게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많은 것들을 알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태어나는 아이의 몸 속에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가서 그 아이의 몸을 빌어서 환생한 것으로 착각을 하거나, 환생한 것처럼 가장(假裝)을 하여 아이의 기관을 이용해서 말을 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생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를 잘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그 영혼이 윤회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의식을 조종하게 되면 의식을 조종당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시험문제의 답을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적 접촉을 하여 다른 의식체를 자기 몸 속에 가진 사람이 시험을 치면, 문제지를 받기도 전에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지 의식에 비치게 된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리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산 사람의 의식에 의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체의 역할에 의해서 자신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뇌호흡을 하고 나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자기의 몸에 다른 살아있는 기운이 들어온 것이다. 이런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뇌호흡을 하는 것은 자신을 매우 불행하게 하는 원인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부모들이 뇌호흡을 시키겠다고 많이 보내고 있다. 사실상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 점수를 잘못 받는 것은 괜찮은 것이다.
사람의 근본 바탕에 따라서 공부는 못해도 일은 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시험 점수가 사람의 삶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부를 못한다고 아이에게 뇌호흡을 시켜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일로 인해서 장차 일이라도 잘 할 수 있는 아이를 오히려 자기를 잃어버린 폐인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사람이 공기 중의 생기를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생기가 인간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면, 그리고 음식물에서 섭취해야 하는 생기를 호흡을 통해서도 공기 중에서 섭취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물질의 노폐물은 대부분 대소변으로 몸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음식에 있던 생기의 일부분만 몸 속으로 흡수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만일 공기 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생기를 골라서 들이마실 수 있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공기도 무게를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공기 중에 있는 생기를 많이 마시고 나서 저울에 올라가면 밥 먹었을 때처럼 무게가 더 늘어나야 된다. 우리는 사실적인 증거를 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면 현실의 어떤 일들이라도 함부로 믿는 일은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기의 정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현실을 보면 된다.
모든 기운은 물질과 활동하는 생명체들에 들어 있다. 그리고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먹고 산다. 성자(聖者)도 곡식이나 풀잎을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식물도 생명체이므로 누구나 생명체를 먹고사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체 속에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생명체 속에 있는 생기를 먹는 것은 괜찮지만, 공기 속에 있는 생기를 몸에 받아들이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잘 먹고 잠을 잘 자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잘 못먹고 잠을 잘 못자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공기 중의 생기를 받아들이는 일을 극히 경계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대체로 생기가 잘 접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면한 사람들은 기 운동이나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정신이 방황하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찾아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상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하게 되니까 자신에게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공기 중에 있는 생기들은 자기가 접촉한 인간을 통해서 함정을 만들어 놓고, 그 함정에 걸려드는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거나, 경계심이 없이 방심하고 있거나, 의식이 허약한 인간에게 접촉하게 된다.
만일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 의지의 상실로 인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자기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매스컴에서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기 운동이나 뇌호흡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수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대단한 것처럼 설명을 하게 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 언론 매체가 사회 자체를 잘못되게 하고 어지럽히는 원인을 제공하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도(道)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나와서 기 체조, 기 운동의 시범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높은 경지에 오르면 고난도(高難度)기술을 습득하게 되어서 손쉽게 공중에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높은 경지는 무엇이고 고난도 기술은 무엇인가? 이상한 옷을 입고 공중에 뛰어오르는 일이 자기 자신의 좋은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들이 대단한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실제로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세상에는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토록 좋은 것이 그 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왜 최근에 와서야 우리 나라 같은 어두운 사회에서 이처럼 많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말세의 현상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찌 된 셈인지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일들을 매스컴이 앞장서서 소개하고 내세우고 있다.
특히 TV 방송에서 자주 취급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많은 사람들이 확인된 사실처럼 믿게 함으로써 그런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의 앞날에 큰 불행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을 보면 사회가 어둡고 정치가 혼란한 사회일수록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서는 남의 말을 듣고 그냥 믿었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구(警句)를 무시하고 자기도 알지 못하는 생기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며, 또한 자기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겪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을 잘 관찰하고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구든지 이 대담을 통해서 잘 듣고 배워서 확인한다면 건강한 생활과 좋은 삶을 갖게 될 것이고 그 좋은 삶의 역할로 자기 자신을 크게 축복하게 될 것이다.
이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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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w77 | 2008/12/06 15:40 | 氣의 실 체 | 트랙백 | 덧글(0)

명상의 한계

명상의 한계명상의 한계

많은 사람들이 수행에 대한 마술에 걸려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당시 유행하던 모든 요가행과 고행을
모두 경험하시고 수행의 헛됨과 실체를 명확히 밝혔건만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그 주변에 있던 거짓된 자들은
자신들의 밑천을 버리기 아까워
다시 불교를 믿는 순진한 이들에게 명상의 신비를 가르키면서
불교의 순수한 가르침인 올바른 인과의 가르침을 흐려놓았던 것입니다.
수행에 대해 그대의 인식은 어느 정도 방향은
바로 잡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너무나 소중하고 진지한 것이어서
잠시라도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삶을 통하여 자신을 닦아야 하는 것이지
삶과 유리된 수행을 통하여 자신을 닦기에는
현실은 너무나 냉엄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중에 나와있는 명상기법을 수행하게 되면
현실을 버린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추게 될 것이며
결국 진지한 삶을 까먹어 빈쭉정이 인생만 남게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삶도 수행이며
명상도 수행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분명히 말하거니와 명상은 올바른 인생의 수행이 아니며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것입니다.
삶을 통하여
올바른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깨달으며
헛된 욕망을 버리고 맑은 정신을 얻을 때
진정한 인간수행이 가능한 것이지
참선을 한다거나 소리나 빛에 집중하거나
인체의 특정부분에 집중하는 것을 통하여서는
결코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킬수 없는 것입니다.
명상은 자신의 삶의 수행을 통하여 얻게 된 마음을
보는 기술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평소에는 제자들에게
명상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팔정도를 배우고 행하여
세상에 공덕을 쌓고
자신의 마음을 닦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기가 와서 세상을 위해 일을 할 수 없을 때
그동안 닦아온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하한거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참선이나 단전호흡이나, 각가지 명상기법들은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보게하는 단순한 기술이기에
이것을 통하여 마음의 묘용을 체험할 수는 있으나
마음 자체를 닦을 수는 없습니다.
즉 마음을 닦은 정도에 따라
마음의 묘용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지
명상의 기법에 따라
욕망과 집착을 버릴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모든 욕망과 집착을 끊어버린 사람은
어떠한 명상기법을 해도
즉시 근원적인 반야의 마음으로 들 수 있으며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어떤 명상기법을 해도
마음을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이 요가행의 최고경지인
인식의 대상이 사라지고 인식의 주체도 사라진
비상비비상처에 이르렀지만
또 다시 바람결에 흘러가는 가족과 나라의 일을 접하고는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명상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다시 요가수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닦아
마침내 보리수 나무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도 소리에 집중하면
막바로 명치속의 아득한 경계속에 들어가게 되고
미간에 집중하면 온몸의 선천기운이 발동하며 아득해지고
내단에 집중하면 정수리가 열려
하늘의 기운이 온몸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며
이뭣고를 잡으면 곧 마음의 실체를 보고
텅빈 경계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황홀경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을 닦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미 정화되어 있는 나의 마음을 보는 것이지
그러한 단계를 통하여 내마음을 정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이러한 명상의 사실을 분명히 알아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기회를 놓쳐
인생을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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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w77 | 2008/12/06 15:38 | 명상의 한계 | 트랙백 | 덧글(0)

*업 이 란

예로부터 업(業)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무엇을 두고 업이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어떤 것인가?
업이란 자신을 움직이는 근원 속에 있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이 근원 속에 있는 업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자.
이 업이란 자신 속에 있던 일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속에 있던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자기가 한 일이 자신의 의식 속에 입력이 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자연을 보다 세밀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은 자신 속에 있던 일을 자신의 열매 속에 전부 입력시키고 있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하나의 주체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일을 의식 속에 전부 입력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 의식은 영체 구실을 하고 이 영체가 죽음에 임하게 되면 인체와 분리됨으로써 독자적인 자기를 존재하게 하고 있다.
이 영체 속에 있던 의식이 사라지면 영체는 곧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의식이 사라졌다고 해서 과거에 자기에게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사라졌지만 그 속에는 자기 속에 있었던 것이 그대로 잠재해 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잠재해 있는 이 복합된 일들이 계속해서 하나의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히 자신 속에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지키려 하는 것이 업이며 업의 습성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존재하게 하는 뜻은 단 두 가지가 있다. 세상은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다.
하나는 인과의 법이다.
좋아지고 나빠지는 현상은 이 인과의 법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또 하나는 윤회이다.
윤회라는 것은 모든 것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있는 것은 계속적인 반복현상을 일으키므로 해서 이런 현상이 있게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끝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도 이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고, 모든 만물이 인과의 법에 의해서 나고 죽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세상에 난 것은 스스로 소멸되지 않고 계속 자신을 존재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리 속에 있는 일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입력이 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계속 그 영향을 받아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자기 속에 존재하게 했는가에 따라서 현세가 다르고 내세가 다르다. 그래서 영원히 있게 될 자신 속의 일들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바로 인연을 짓는 일이다. 사람이 나쁜 것과 인연을 지으면 거기에서 나쁜 것이 생기게 되고, 좋은 것과 인연을 지으면 좋은 것이 생기게 된다. 이것 또한 인과의 법이다.
'업'은 바로 인과에 의해서 자기에게 존재하게 되어 있다. 이 업이 존재하는 한, 사람은 업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이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업이 큰 사람이 하는 일은 자신이 좋아지기는커녕 남까지 망치게 되고, 자신이 좋아지려고 하는 일이 항상 자기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것은 자기 속에 좋은 근원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 속에 그런 좋은 근원이 없으니, 자기에게 좋은 일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럴 때에는 깨달음만이 자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속에 있는 업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우리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깨달음이 없이는 누구도 이런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의 법은 엄격하다. 수학에서 2+2가 1이나 5가 될 수 없듯이 진리에서도 있는 일은 불변한다.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결과를 사람들에게 있도록 한 일이 60%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지해서 실수한 일이 40%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잘못된 성질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잘못된 일을 노력하면 고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수를 해서 자기가 자신 속에 지어 놓은 무지의 결과인 업이 60%이고 선업이 40%이면 이 때에는 좋은 일을 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 왜냐하면 좋은 자기보다도 더 큰 업의 힘이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어디에서 생기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러한 업이 과거 자기 속에 있는 일로 인하여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업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는가? 그것은 자기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생기게 된다. 그러면 업은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짓게 된다. 행동으로 업을 지을 수 있고 말로서도 지을 수 있다.
말로서 어떤 업을 짓게 되는가?
자기가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면 그것은 업이 된다. 거짓말은 자기를 망치고 남도 망치는 일이 된다. 이것이 바로 말로 짓는 업이다.
그래서 과거 석가모니 부처에게서 제대로 배웠던 제자들은 경전의 맨 앞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고.
부처는 깨달은 분이었기 때문에 업의 세계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설명을 했다. 그의 제자들은 자신이 들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혹시 부처의 말을 그릇되게 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고 쓴 것이다.
제자들은 깨달은 사람도 아니어서 세상을 확실히 본 것도 아니니까 부처에게서 배운 것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확실히 모르는 것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현실 문제를 통해 세상의 일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농사일을 잘해서 좋은 열매를 수확하여 많은 이익을 얻는 사람이 농사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농대의 교수는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잘하는 학생들을 만들어 낸다. 왜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서 배워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거기서 배운 사람도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공대의 교수가 미국의 유명한 공과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기계를 항상 다루는 곳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 와서 교수 생활을 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이 기계를 잘 다룰 수 있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를 가르치려면 다른 것은 볼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이 힘든 환경과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생활에 성공하여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확인하여 그 사람을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세워 놓으면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잘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각 학교에서 수만 명의 선생이 남을 가르치고 있지만 선생이라는 사람들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자기 전공분야에서 제대로 일을 해보고 강단에 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잘못된 교육이 사람의 의식을 버려놓았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업을 얻어오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업이 많고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하겠다. 실수를 해서 자신이나 남에게 잘못된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러한 실수를 우리는 악업(惡業) 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고 한 일, 무의식 중에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이 또한 악업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오게 되는가 하면, 현재와 미래에 걸쳐 끝없는 불행이 이어진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미래에 끝없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하나의 기체에 의식이 입력되어 있다. 의식이 이 기체를 움직일 때에는 이 기체 자체는 살아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보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자기 의사를 표출하게 되지만, 이 기체가 일정기간이 지나 노화되어 버리면 이 의식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왜 이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같이 나타나느냐 하면, 의식에 애착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식자체가 죽지 않으려고 계속 움직이며 활동을 하니까 살아있는 것과 꼭 같다고 하겠다. 이 기체가 이런 상태에 있을 때에는 업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혼탁해지는 것이다. 기체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의식 자체가 없어지면 이 기체 자체는 자기가 입력한 의식을 발생하는 자기 속에 있던 것을 가지고 태어나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 생명이 부활되었을 때 그 생명력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의식에 의해서 나타난다. 과거의 기억을 상실했다는 것뿐이지 그 활동을 일으키는 그 근원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일에 의해서 현재가 영향을 받고, 현재의 일에 의해서 미래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번 지어진 것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활동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 활동도 하지 않으면 그 의식자체는 죽게 된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살아가는 물질은 있을 수 없다. 영체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영체가 곡식의 열매와 다른 것은, 몇 가지의 다른 세계와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계라는 것은 천국과 지옥, 극락 같은 것이다.
생명의 세계는 현재의 세계를 말하고, 사후의 세계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하며,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근원의 세계가 있다.
생명체는 이런 세계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데, 이 근원의 세계에 가면 아무 것도 없다. 이 세계에는 신(神)도 들어갈 수가 없는 세계이다. 산 자가 해탈을 했을 때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다.
의식이 갈 수 있는 세계라 하면 그 곳은 살아있는 세계다. 그러나 근원의 세계는 살아있는 세계도 아니고 죽어있는 세계도 아니다. 이 의식이 없는 세계를 근원의 세계라 하고 태어남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세계, 그 세계에서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현세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끝없는 내세에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연이 업을 만들고 업이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업이 큰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화를 낸다. 성질에 맞지 않으니까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업이 중간정도인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업이 없는 사람이 진리를 들어야 기뻐한다.
"바로 그것이다. 맞다! 저 가르침은 대단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업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치려 하면 받아들이지도 않으니까 의심과 시비만 생긴다. 이것은 업의 활동이 커서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것은 있는 일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서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있는 일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학벌이 높은 사람에게 배우기 보다 의식이 좋은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5백년이상 유교라는 것이 존재했다. 유교는 이상적인 학문이다. 암기만 하면 된다. 또 신학문이 들어오면서도 사람들은 암기만 잘하면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행정 간부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암기 잘하는 사람들은 의식이 좋아서 암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뇌의 활동이 좋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얼마든지 하루저녁에 몇 권의 책을 읽고, 의식 속에 집어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문제를 보면 의식 속에 있는 것을 내어놓으면 된다. 그런 사람이 사법고시에 일등을 하고 행정고시에 일등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학과성적에 일등을 해서 대학의 교수가 되고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람들은 사회의 현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엄청난 시행 착오가 존재하게 되고, 그들은 자기들의 시행착오를 숨기기 위해 말을 또 만들어내게 된다. 말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업을 짓는 일이다.
자기가 모르는 말이나, 자기가 실수를 해서 거짓 말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말로 업을 짓는 일이다. 이 업은 항상 자기에게 대물림을 한다. 그래서 자기 속에서는 그 업의 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만약에 사람들이 이런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을 원한다면, 스스로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전하는 일을 함으로서 선업을 지어야 한다.
축복이 되는 일은 선업이고,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악업이다. 악업을 짓지 말고 사랑을 배워서 행해야 옳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구하는 길이다.
우리는 이 업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현실에 있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을 머리에서 떨쳐버려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근본이 나쁜 사람들은 잘못 살게 되어있다. 반면에 근본이 좋으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뛰어나게 되어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항상 역사를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역사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모든 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일들이 반복되듯이 역사 속에 있는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역사 속에서 보면 된다.
잘 살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왜 의지가 약한가? 업이 크니까 의지가 약한 것이다. 세상에 있는 일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인연에 의해서 존재해오고 있다.
자신 속에 있는 일이나 세상 속에 있는 모든 일이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인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돌감을 만들어 냈으면 그 돌감은 계속 돌감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돌감을 세상에 있게 하는 것이고, 단감이 만들어 졌을 때는 단감이 계속 단감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계속 단감이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업이란 무엇인가?
업은 업이라고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있었던 일로 인하여 내 속에 있게 된 것으로, 내 생명의 근원에 있게 된 일들을 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내 생명 속에 있는 이 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과거로부터 나에게 있었던 일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한번 존재한 것은 쉽게 없어지지 아니하니,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지은 업은 수백 번을 되풀이하면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업도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전생에 기생집이나 출입하고 술을 잘 먹던 사람은 현세에 태어나도 착실하게 살지 못한다. 여전히 기생집이나 출입하고 술만 먹고 다니게 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물려받는다 해도 곧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곧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결국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어야만 그 짓을 그만 두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이번 생에서 고생을 좀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망해 버린다.
과거의 노름꾼은 현세에 와서도 도박판에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자기가 한 일 속에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항상 그 일만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전생에 그림을 잘 그리던 사람은 현세에 태어나서도 화가가 된다. 그 사람은 그림을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린다.
그런 일이 자기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확실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업을 짓지 않는 일이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써 자신 속에 좋은 일을 있게 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선업을 오랫동안 행했기 때문에 악업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악업이 적고 선업이 커가자 그는 깨달음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선업이 큰 사람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도 그것을 극복 해 나간다. 태어날 때부터 근본이 좋으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거기에서 스스로를 윤택하게 하는 지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있는 일을 바로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크면 클수록 선업을 자기 속에 쌓을 수가 있다. 깨달음 없이 선업을 자기 속에 쌓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다.
세상의 일을 설명하려면 인과와 윤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있는 일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근원도 있는 일에서 생긴 것이고, 업의 근원도 있는 일에서 생긴 것이고, 윤회의 근원도 있는 일에서 생긴 것이며, 인과의 근원도 있는 일에서 생긴 것이다. 모든 일이 있는 일로부터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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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dw77 | 2008/12/06 15:36 | *業 이 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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